(Its audio version is available on YouTube and podcast platforms with the Korean title "즐겁게 사는 법")
나는 한국과 미국, 이 두 나라에서 살아봤다. 그래서 이 두 나라의 소비 문화에는 흥미로운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I’ve lived in both Korea and the US. And I found out there is an interesting difference between the two in terms of the consumer culture.
대체적으로 미국에서는 소비를 미화해서 생각한다. 최대한으로 즐기면서 살라는 거다. 갖고 싶은 것도 다 사고, 맛있는 것도 양껏 먹고, 여행도 원없이 다니고, 그렇게 사는 게 좋다는 거다.
In the US, they look at consumption mostly in a positive light. They say, enjoy life’s pleasures to maximum. Buy everything you want to have, eat everything that tastes good, travel to your heart’s content and so on. That’s a better way to live, they say.
반대로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한국문화는 그렇지 않았다. 절약을 굉장히 큰 미덕으로 생각했다. 너무 욕심 내고 많이 소비하는 걸 좋지 않게 봤다. 그 재미있는 예가 바로 몽당연필인데, 이건 아주 오래 써서 무지하게 짧아진 연필을 말한다. 너무 짧아져서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연필.
On the other hand, the Korean culture that I experienced when I was young wasn’t like that. Frugality was seen as a great virtue. They saw it negatively when someone desired and consumed too much. An interesting example of it is a “mongdang pencil”, which refers to a pencil that was used for a very long time and got extremely short, too short that you can’t hold it any more.
근데 이걸 쓰는 방법이 있다. 잉크가 다 없어진 볼펜에서 안의 부품들을 빼고 그 빈 볼펜대에 끼워서 쓰면 된다.
But there is a way to use it. You can take out the inner parts from a ballpoint pen whose ink ran out and insert the pencil in that empty tube.
내가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이런 식으로 몽당연필을 쓰는 걸 권장했다. 몽당연필을 쓰는 애들한테는 상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애들은 다음과 같은 꼼수로 이 상을 받기도 했다.
When I was young, they recommended at school that we use mongdang pencils that way. They would sometimes give awards to the kids who use mongdang pencils. And some kids would receive this award by cheating.
먼저 멀쩡한 새 연필들을 쫘악 부러뜨린다. 그리고 잉크가 아직 차 있는 볼펜들도 그냥 안에 있는 부품들을 쫘악 빼낸다. 그리고 그 볼펜대들에 부러뜨린 연필들을 끼우면 몽당연필을 많이 갖고 있는 거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 연필을 오래 아껴 쓰는 아이처럼 보이니까 상을 받게된다.
First, they snap a bunch of brand new pencils. And they take out the parts from ballpoints pens that are still full of ink. When they insert the snapped pencils in those ballpoint pens’ tubes, it would look like they have a lot of mongdang pencils. Then they look like the good kids who use the same pencil for a long time so they get to receive the award.
한국은 옛날 뿐 아니라 지금도 과소비에 대해서 좀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돈 많은 사람들이 너무 사치스럽게 사는 걸 손가락질하는 분위기가 있다.
Not just in the old time but even now, they tend to see overconsumption a bit negatively in Korea. For example, there is this sentiment of pointing the finger at rich people living too luxuriously.
미국에서는 부자가 자기 돈을 자기 맘대로 펑펑 쓰는 걸 손가락질 하지는 않는다. 돈을 어떻게 버느냐에 대해선 욕을 해도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해선 너그럽다.
In the US, they don’t point the finger at the rich spending their own money. They are critical of how you make money but forgiving of how you spend it.
이렇게 얘기하니까 소비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주로 두가지인듯 하다. 첫 번째는 원하는 건 다 사고, 다 먹고, 다 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무조건 덜 사고, 덜 먹고, 덜 하는 것.
Now that I put it this way, it appears that there are mainly two attitudes toward consumption: The first one is buying, eating, and doing everything you want. And the second one is to restrict your buying, eating, and doing no matter what.
여기서 첫 번째 태도, 무한소비의 태도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두 가지를 지치게 만들 수 있어요. 바깥에서 우리를 꼭 안아주고 있는 환경. 그리고 안에서 우리를 꼭 붙들고 있는 영혼. 이 두가지를 다 지치게 만든다.
The first one, the attitude of unlimited consumption, can tire out the two things that are precious to us: The environment, which is hugging us from the outside, and the soul, which is holding us from the inside. The first attitude wears out both.
그렇다고 해서 두 번째 태도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내 몸과 마음에 생기는 욕구를 너무 억제하면 부족한 상태, 결핍상태가 될 수 있으니까. 이러면 우울하거나 화가 나거나 그런 일이 자주 생긴다.
But can we say there is absolutely no problem with the second? Not necessarily. If we over-suppress the desires of our body and mind, it could lead to a state of deficiency. Then we are likely to get depressed, upset and such.
근데 옳다 틀리다, 흑이냐 백이냐, 이렇게 양분법으로 분류할 수 있는 건 세상에 하나도 없다. 항상 또 다른 가능성들이 있다는 것이다.
Right or wrong, black or white… I don’t think there is anything that we can categorize in such a dichotomy. There are always other possibilities.
소비에 있어서도 제3의 길이 있을 수 있다. 그건 바로 소비를 억누르는 대신에 즐거움을 최대화하는 방식이다. 즉 지금 먹고 있는 거, 지금 갖고 있는 거, 지금 하고 있는 거, 이런 거에서 최대의 즐거움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There could be the third way when it comes to consumption. And it’s the approach where, instead of trying to suppress consumption, you maximize the pleasure. In other words, you extract the maximum pleasure from what you are eating now, what you have now, and what you’re doing now.
사실 우리가 집이 좁아질 정도로 물건을 사고, 몸이 망가질 정도로 음식을 먹고, 지겨워질 정도로 취미생활을 하고,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즐거움에 둔감해져서 그렇다. 누리는 법을 까먹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We keep buying stuff until the house runs out of space, keep eating until it harms our body, and pursuing our hobby until we get tired of it. Why do we do all this? It’s because we’ve become numb to pleasures. Because we’ve forgotten how to enjoy them.
먹는 걸 예를 들어보자. 솔직히 우리는 음식 맛을 모르고 그냥 먹는 경우가 많다. 딱 처음 한 입 먹을 때만 맛을 제대로 느끼고 그 다음은 그냥 씹고 넘긴다. 먹으면서 말 하느라고, 생각 하느라고, 핸드폰 보느라고, 음식 맛을 못 느낀다.
Let’s take a look at eating as an example. Mostly, we just eat without sensing how the food tastes. What we properly sense is only the first bite, and then we just chew and swallow. We can’t taste the food because we are too busy talking, thinking and looking at the cell phone.
이렇게 즐거움을 누리는 법을 잊어먹은 상태, 이런 상태에서 계속 소비를 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아무리 쇼핑을 해도, 아무리 여행을 다녀도, 아무리 고급 요리를 먹어도, 뭔가 허전하다.
When we are in the state of not knowing how to enjoy pleasures any more, further consuming is like pouring water into a bottomless pot. No matter how much you buy, how much you travel, how many 5-star dishes you eat, it all feels empty.
이러면 양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고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돌아다니게 된다. 근데 이게 양의 문제가 아닐 때가 많다.
When it happens, we think it’s a problem of quantity. So we eat more, buy more, and travel more. But it’s usually not a problem of quantity.
즐거움을 최대화 하려면 똑같은 거에서 새로운 걸 찾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To maximize pleasures, we need to learn the art of finding the new from the old.
세상의 모든 것들은 계속 바뀐다. 물건도 행위도 감정도 다 그렇다. 예를 들어 똑같은 티셔츠라도 그걸 입을 때의 기분은 이번 주와 다음 주가 다를 수 있다. 이런 변화를 감지해내고 즐기는 기술을 익히는 게 필요하다.
Everything in the world changes constantly. Things, behaviors and emotions… they all change. Even with the same shirt, for example, the way you feel when you wear it can change from this week to the next. We need to learn how to detect these changes and enjoy them.
자연 속에 있는 것들은 항상 변한다. 완전히 똑같은 상태를 두 번 이상 반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구름은 항상 바뀐다. 그래서 같은 언덕 위에 열 번을 올라가더라도 그건 열 번의 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다. 열 개의 다른 하늘을 보는 거니까.
Things in nature change all the time. They don’t repeat the same exact state more than once. For example, clouds always change. So, even if you climb the same hill ten times, you are having ten different experiences, because it’s seeing ten different skies.
그리고 우리 주변에 정말 흔하게 있는 나무, 이것도 계속 바뀐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하루하루가 다르다.
And a tree, commonly found around us, also changes constantly. Not just by spring, summer, fall and winter, but also by each and every day.
‘에이~ 나무란 게 뭐 그렇게 빨리 변해. 오늘이랑 내일이랑은 똑같지 뭐… ‘, 그런 생각이 든다면 오늘 한 번 나무에 달려있는 나뭇잎 숫자를 세보자. 그리고 내일 다시 세보자. 분명히 다를 것이다.
‘No way. How can a tree change so quickly? I think it will look the same tomorrow’. If you think that, try counting the leaves on a tree today. And then try counting again tomorrow. I bet they would be different.
즐겁게 사는 거에는 새로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새로움이란 걸 우리는 보통 돈 주고 사려고 한다. 근데 돈 주고 새로움을 구매하는 건 한계가 온다. 새로움을 맛볼 수 있는 입맛이 떨어질 수 있다. 또는 새로움을 살 수 있는 돈이 떨어질 수도 있다.
Enjoying life requires novelty. And we usually try to buy it with money. But buying novelty with money has a limit. You could run out of the capacity to taste it. Or you could run out of the money to buy it.
그래서 이미 우리 눈 앞에 있는, 우리 입 안에 있는, 우리 귀에 이미 들리고 있는, 그런 숨겨진 새로움을 찾아내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That’s why we need the skill to discover hidden freshness in what we already have in plain sight, what we have in our mouth, and what we are already hearing.
비행기를 버스 타듯이 맨날 여기저기 돌아다녀야만 새로운 걸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집 앞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다 보는데 평생이 걸릴 수도 있으니까.
To experience something new, you don’t need to get on planes and fly around all the time as if you were riding buses. You don’t need to because it can take your whole life to thoroughly see a single tree right in front of your home.